[섬 도보여행 1] 여행 첫날, 소록도에 가다
5월 4일부터 8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소록도와 거금도, 거문도를 걸었습니다. 거금도가 생각보다 작아 만 이틀 만에 다 걸어, 예정에 없이 녹동항에서 거문도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녹동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는 거문도 역시 작은 섬이었습니다. 거문도 서도 끝에서 거문도 서도 끝까지 걷는데 하루가 채 안 걸렸으니까요.
거금도에서 이틀을 잤고, 녹동항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그리고 거문도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그 민박집, 1층은 노래방, 2층은 민박이었는데 음악소리에 따라 방이 울리더군요. 그래도 바로 앞이 바다였고, 나름 깨끗한 집이었지요. 여자 혼자 다니는 여행이라 숙소만은 값은 좀 비싸더라도 편안하고 깨끗한 곳으로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바다를 지겹도록 보고 또 봤습니다. 그리고 돌아왔는데 마음은 여전히 길 위에 남겨두고 온 것 같습니다. 4박5일간의 섬 도보 여행이야기, 이제부터 풀어놓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녹동항에서 소록도까지 배를 타고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고속버스에서 내려 배를 타러 녹동항으로 걸어가다가 소록대교를 보았다.
아, 3월 2일에 소록대교가 개통되었다고 하더니, 저게 그 다리구나. 다리가 있다면 걸어서 건너면 되겠구나.
소록대교에는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했다. 차도와 갓길이 전부. 그런다고 못 건널까. 길이 있다면 사람이 어딘들 못 걸을까.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서도 걷는 게 사람이 아닌가. 차가 못가는 길을 사람은 갈 수 있다.
5월의 햇볕은 뜨거웠다. 새로 세워진 다리는 반짝거리면서 빛나고 있었고, 이따금 버스나 승용차가 지나가는 게 멀리서 보였다. 녹동항에서 소록대교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건 당연한 수순. 자, 가자. 소록대교를 건너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녹동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탄 건 오전 8시. 녹동까지는 하루 다섯 차례 고속버스가 운행된다. 차삯은 3만4600원. 여섯 시간쯤 걸릴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녹동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5분. 다섯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녹동항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소록도로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굶었다. 바다 비린내가 풍기는 녹동항에는 횟집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중 한 곳에 들어갔는데 푸대접을 당했다. 녹동의 첫 인상이 팍 구겨지는 순간이었고, 혼자 여행하는 게 참으로 껄끄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혼자입니꺼?"
나이든 할머니가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배낭을 내려놓고 탁자 앞에 앉는 나를 보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이 할머니, 주방 쪽으로 간다. 주방 쪽에서 혼자 왔는데,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주방에서 들리는 말.
:혼자는 안 해요."
1인분은 안 판다는 말이다. 안 판다는 데야 배길 재간이 있나. 일어나서 나와야지. 솔직히 그 말을 듣는데 김이 팍 샜다. 하긴 혼자 앉아 회를 먹겠나, 그냥 간단하게 밥이나 먹을 생각이었지. 밥맛이 싹 가신다. 에라, 소록도에 들어가서 밥 먹을 데 있으면 먹자. 하지만 소록도에서는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이 없었다. 기껏해야 매점이 있을 뿐.
배가 고팠다면 다른 식당이라도 찾아들어갔을 텐데, 다행인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소록대교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도로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 그걸 보면서 걸으면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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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가는 길. 27번 국도의 끝은 거금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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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와 거금도를 연결하는 다리 공사.
소록대교로 가는 길은 새로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 티가 역력하게 났다. 길을 따라 걷는다. 햇볕이 생각보다 많이 뜨겁다.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 썼지만 햇볕을 막기에는 부족하다. 선크림을 바를까, 하다가 그냥 걷는다. 얼굴에 뭔가를 바르는 것, 정말 싫다. 하지만 맨 얼굴로 종일 걸으면 저녁에 꼭 후회를 한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붉어진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일어나 거울을 보면 까매진 얼굴의 나를 보게 된다.
소록대교 앞에 섰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연륙교. 길이가 1160미터라고 했던가. 다리 위를 걸어가니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다리 아래 바닷물이 찰랑거리고 있다. 푸른 바다 위를 걷는 이적을 행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다리 저 쪽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소록도와 거금도를 잇는 연도교 공사를 하는 중이다. 2011년에는 완공이 된다던가. 그걸 보니 다리가 완성된 다음에 왔더라면 거금도까지 걸어서 가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든다.
다리 위에 인도는 없어도 차량 통행이 뜸해 위험하지 않다.
다리 위에서 보니 건너편으로 녹동항이 보인다. 항구의 모습은 어디나 비슷비슷 하다. 정박한 배들이 있고, 횟집이 즐비하고, 숙박업소가 있고, 사람들이 있다. 배, 작은 고깃배가 대부분이지만, 녹동항에는 큰 배들도 여럿 있다. 이곳에서 소록도, 거금도에 가는 배가 있고, 거문도, 제주도에 가는 배도 있기 때문이다. 녹동에서 제주까지는 배를 타면 네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단다.
정작 다리는 그다지 길지 않은데 다리를 건너 소록도 주차장까지 들어가는 길이 길게 이어진다. 걸어서 그 길을 건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평일(월요일)인데도 대형버스가 여러 대 소록도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고 나온다. 승용차도 많이 들어간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올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주차장에서 왼쪽으로는 국립소록도병원과 중앙공원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소록도해수욕장이 나온다. 사람들은 버스나 승용차에서 내려 병원 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주차장 옆에 매점이 있어서 안을 둘러보니 컵라면과 과자, 음료수 등을 팔고 있다.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을까, 하다가 말았다.
사람들을 따라 병원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병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난 표지판은 수탄장(愁嘆場)이다. 예전에 소록도는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바로 이곳이 그 경계선이었다는 것. 환자들은 병사지대에, 환자 자녀들은 직원지대의 미감아보호소에 격리 수용되어 있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났다고 한다.
박영숙 감독의 독립영화 <동백아가씨>의 이행심 할머니도 이렇게 부모를 만나다가 결국은 병사지대로 옮겨갔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함께 있고 싶어서 한센병에 걸렸다고 했고, 끝내 열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한센병에 걸리고 말았단다, 이행심 할머니는.
병원 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센인들이 만든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가 있어 들어가 캔음료를 하나 사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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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시실
오래전에는 사용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낡고 오래된 건물들은 자료관이나 역사관이라는 팻말을 붙인 채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예전에 한센인들이 겪었던 상처, 공포, 아픔이 서려 있는 건물은 잎을 무성하게 단 담쟁이 넝쿨로 뒤덮여 있었다. 5월의 나뭇잎은 연한 초록빛이다. 그 나뭇잎에 반사되는 5월의 햇볕은 참으로 무심해 보인다. 저 담쟁이 넝쿨은 예전에도 이렇게 이 건물들을 뒤덮고 있었을까?
검시실 안의 하얀 회벽은 빛이 바래 있었고, 일부에는 시퍼런 곰팡이가 피어 퀴퀴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감금실 안의 긴 복도. 그곳에 어둡고 습하다. 지금 이 건물은 비어 있지만 그냥 비어 있기만 한 것 같지 않다. 한센인들의 깊은 한이 붉은 벽돌 하나하나에, 바닥에, 천정에 깃들여 있을 것 같았다.
자료관, 역사관이라고 하지만 보고 있노라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만 있다. 사진도 그렇고, 전시된 약들도 그렇고, 한센인들이 사용하던 물건들도 그렇고. 그곳을 둘러보면서 묻는다. 한센인에 대한 차별이 지금은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가?
중앙공원에서 본 표지판 하나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수호 원장 동상이 있던 자리. 동상은 태평양 전쟁 군수물자로 징발당해 없고, 동상이 있던 자리만 남아 있다. 수호는 1933년 9월 1일부터 1942년 6월 20일까지 소록도병원의 원장이었단다. 소록도병원은 1916년에 소록도 자혜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이 세웠다. 수호는 악명이 높았던 일본인 원장이었다.
이 인간, 참으로 대단했다. 소록도의 환자들에게 강제로 기금을 징발해서 자기 동상을 세우게 했고, 환자들에게 참배를 강요했단다. 그 뿐인가. 환자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했고 가혹행위를 일삼았단다. 미친 놈, 죽일 놈,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이런 사람의 말로는 비참할 수밖에 없다. 그의 임기종료일은 그가 사망한 날이 된다. 끝내 환자의 손에 살해당하고 말았으니까.
본인이야 동상이 영원히 서 있을 것으로 굳게 믿었겠지만 전쟁에 징발당하고, 그의 악명은 소록도에 오래 남게 되었다. 동상은 높이가 3.3미터에 단의 높이까지 합하면 9.6미터였다고 한다.
중앙공원을 둘러보고, 접근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다른 건물들을 먼발치에서 살펴보면서 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사슴을 닮은 모양의 아름다운 섬, 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섬은 관광객들로 부산하고 번잡스러웠던 것이다.
국립소록도병원의 역사는 1916년 설립된 소록도 자혜의원에서 시작되는데, 이 병원은 당시 조선 내의 유일한 한센병 전문의원이었다. 이곳의 중앙공원은 1936년 12월부터 3년 4개월 동안 연 인원 6만여명의 환자들이 강제 동원되어 6천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지금도 공원 안에 들어서면 환자들이 직접 가꾸어 놓은 갖가지 모양의 나무들과 함께 전체적으로 잘 정돈된 빼어난 조경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공원 곳곳에는 환자들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기념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 고흥군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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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대교에서 본 녹동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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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학살당한 한센인들을 위한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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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실의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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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넝쿨, 연한 빛이 참으로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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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 원장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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