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무거우나 머리는 가벼운 집 부농루를 보면 ‘환경 결정론’이 생각난다. 환경 결정론은 사람이나 생물이나 모두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에 따를 수밖에 없으며, 환경은 그 속 에 사는 생물들의 존재 양태와 삶의 방식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 결정론은 일변 타당성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주체 의지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 서 일찌감치 그 명맥이 끊어졌다. ‘달나라에도 호텔을 짓겠다’는 세상에서 환경이 인간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룩하고 김제, 만경의 너른 벌판에 들어서면 자연에 대한 외경 심을 어찌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부농루는 일망무제의 벌판에 몸을 바짝 붙이고 있다. 높이는 2층이지만 전체적인 몸피가 두껍기 때문 에 착 가라앉아 보인다. 몸체를 땅에 붙인 이유는 평야가 가진 ‘수평성’에 순응하기 위함이다. 땅 을 딛고 땅에 의지해 사는 농사꾼 동네에서 땅을 박차고 나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몸체를 무 겁게 하면 우악스러워 보이는 단점이 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2층 몸체를 나무 판재로 마감하고 지붕을 연처럼 띄웠다.
이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담장이다. 기존의 담장이 가지는 차폐막의 성격을 벗어 던지고 반 개 반폐(半開 半閉)의 담장을 만든 것이다. 최 소장은 설계 노트에서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 고 있다.
“이 집의 키워드는 동네와의 교감이다. 이를 위해 남측으로 향한 거실의 필로티, 도로에서 접근이 쉬운 낮은 평상, 완전히 닫히지도, 완전히 열리지도 않은 목재 가림막, 그리고 흙마당과 싸리나무 담 장 등의 건축적인 장치를 마련하였다.”
이 집의 담장은 중간 중간에 폭이 넓은 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나무 판재로 가림막을 설 치했으며 지붕을 데크 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에 기둥 사이 공간, 지붕 등지에 아기자기한 쌈지 마당 이 생겼다.
담장 끝에 설치한 대문은 콘크리트 프레임으로 틀을 짜고 기와 담으로 자동차 출입구와 사람 다니는 길을 나누었다. 중국의 옛 주거 양식에서 빌려 왔다는 기와 담은 이른바 ‘영벽’이라 불리는 것으 로 집의 지위와 성격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한다.
이 집의 현관에는 두 개의 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하나는 집안 내부로 들어가는 중문이고, 다른 하나 는 다용도실로 드나드는 무니다. 다용도실을 현관에 붙여 설치한 것은 창고처럼 사용하기 위해서다. 전원 집의 경우는 신발을 벗지 않고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반드시 필요한데 ‘부농루’에서는 이 공간을 현관 안쪽에 만든 것이다.
‘부농루’ 1층은 현관에서부터 화장실, 부엌, 계단실, 안방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고 부엌 앞쪽 튀어나온 부분에 거실이 있다. 화장실은 여느 집의 2배쯤 되는 크기로 커다란 욕조를 갖추고 있다. 도심에서 떨어진 곳이라 목욕탕 가기가 쉽지 않은 탓에 널찍한 욕실을 만든 것이다.
계단실은 안방과 거실 양쪽을 연결시키는 곳으로 지그재그 형태를 구성했다. 계단실 벽에는 넓은 창 문을 달아 외부 공간 같은 느낌이 들도록 했다. 거실은 마당 쪽으로 튀어나온 부분에 장방형으로 배 치되어 있는데 2층을 오픈시키고 외부 필로티와도 연계되기 때문에 수직부와 수평부에 각각 한 개씩 의 공간이 더 있는 셈이다.
2층은 필로티 상층부에 있는 아이 방과 할머니 방 위층인 안방 등 2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방 모두 지붕이 떠 있고 그 밑에 측창을 냈기 때문에 탁월한 채광 효과를 갖고 있다. 아이 방에 는 담장 옥상 데크로 나가는 출입문이 있어 집 앞에 펼쳐진 평야를 내다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배려가 꼼꼼한 ‘부농루’는 세월의 두께가 쌓일수록 더욱 윤 기 나는 집이 될 것 같다.
● 최홍종은 1963년생으로 명지대학교 건축과,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을 졸업하고 중원건축, (주)건 영설계실을 거쳐 1996년 (주)건축동인을 설립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부죽동 모여 살기 작품 및 기 획’, ‘구의 빌라’ 등이 있다 |